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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옥천읍 오대리
오대리(五垈里)는 본래 오류티리(五柳峙里)와 유포리(柳浦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이름유래

오대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들을 합치면서 오류티리의 맨 앞자인 오(五)자와 텃골 즉 대곡(垈谷)의 대(垈)자를 한 자씩 합하여 오대리라 칭하게 된 것이다. 오류티리는 우리말로 “오리티”라고 부르는데 도연명(陶淵明)의 오류(五柳)를 상징하여 오류티라 부르게 되었다. 유포는 우리말로 “버들개”이며 강가에 버드나무가 많기 때문에 버들개라 부르다가 한자화하면서 유포(柳浦)라 하였다. 포내(浦內)는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보내” 라 부르다가 한자로 포내(浦內)라 쓰게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오류티리에 20호가, 유포리에 25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오류티리가 18호, 유포리에는 25호가 각각 살았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 조정 때 두마을을 합쳐 오대리라 고쳐 현재에 이른다.
  • 1990년 : 안남면이었던 행정구역이 주민편의를 위해 옥천읍으로 개편되었다. 지금은 옥천읍 오대리다.
마을이야기
오대리는 대청댐 수몰 당시 100가구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배가 없으면 걸어서 옥천읍을 나올 수 없는 육지 속의 섬이 돼서 대청호를 건너는 배는 마을의 필수 교통수단이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창녕조씨(昌寧趙氏)와 한양조씨(漢陽曺氏)가 가장 많았고, 대청댐 수몰 후 동정리(東亭里)와 남곡리(南谷里), 상야리(上夜里) 등지로 이주했다.
마을의 명소
마을에는 고인돌이 한 기 남아 있으며, 오류마을 앞에는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시고, 자신의 손가락까지 잘라 남편을 살리려 했던 조유원의 처 옥천육씨(沃川陸氏) 효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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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옥천읍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