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옥천읍 문정리
문정리(門井里)는 원래 읍내면(邑內面) 저전리(楮田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죽향리와 문정리로 나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문정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강점 후 새로운 이름을 만들면서 마을에 들어오는 길목이 관아에 들어오는 문과 같은 동네라 하여 입문동(入門洞)이라 불렀으며, 이곳에는 아주 좋은 샘(샘거리, 샘길)이 있었기 때문에 입문동(이문리)의 문(門) 자와 샘(하정리) 정(井) 자를 써서 문정리라 하였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 1891년 신묘장적에 의하면 읍내면 저전리라 하여 136호가 살았다.
  • 1910년 : 행정구역 개편 때 군내면이 되면서 저전리가 죽향리와 문정리로 나뉘었다.
  • 1917년 : 옥천면이 되고 1949년 옥천읍이 되면서 문정리는 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이야기
문정리 자연마을은 문정, 모산골(못뚝거리 안쪽에 있는 마을 못안골), 못뚝거리(현재 옥천여중 자리가 문정소류지), 무시랭이, 샘거리(샘골, 샴골), 이문거리(여문거리-동네 어귀에 세워 놓은 홍문) 등이 있었으나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옛 삼양리 가화역터에서 옥천중학교와 옥천고등학교를 지나 옥천상고 부근을 거쳐 관아로 가는 길이 큰 길이었고, 옥천고 부근의 고개를 진상고개라고 했다. 문정리에는 문정뜰이 있고, 관아의 이방 등 관속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무시랭이 앞에는 이방뜰이 있었다. 문정리라는 지명을 쓰게 한 우물이 있던 곳은 2008년 현재 춘추민속관 대문과 담장 주변으로, 지금은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문정리 경계 안에 죽향초등학교와 1946년 개교한 옥천여자중학교, 1987년에 개교한 옥천상업고등학교(1954년~1987년 2월28일까지는 옥천여자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가 몰려 있다.
마을의 인물
문정리에는 또 죽향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창명학교(彰明學校)를 세워 옥천읍 지역 교육의 기초를 닦았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김규흥(金奎興) 선생이 태어났다.
마을의 명소
옥천읍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정지용 시인, 전좌한 독립운동가, 육영수 여사 등을 배출한 죽향초등학교 안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죽향초 옛 교사가 있고, 도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양식의 죽향리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옥천읍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