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옥천읍 옥각리
서정리(西亭里)는 원래 군서면(郡西面) 서정자리(西亭子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서정리가 되어 옥천읍(沃川邑)에 소속되었다.

마을이름유래

옥각리라 부르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하면서 옥곤리의 옥 자와 각신리의 각 자를 한 자씩 취하여 옥각리라 하였다. 옥곤리는 마을 뒷산에 차돌이 옥같이 박혔다 하여 구슬 옥(玉), 산 이름 곤(崑) 자를 써서 “옥곤”이라 부르다가 “외꼰이”으로 변했다. 각신리는 마을 앞에 이지당(二止堂)인 각신서당(覺新書堂)이 있었기 때문에 각신리라 하였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서정자리라고 하여 110호가 살았다. 이때 서정자리는 지금의 군서면 월전리(月田里)와 옥천읍 서정리, 옥각리를 관할하였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옥곤리라 하여 33호가, 각신리에 9호가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 1908년 : 군서면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으로 나누었다. 옥곤리와 각신리는 이소면에 속했었다.
  • 1914년 :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서면이라 고치면서 두 마을을 합쳐 옥각리라 하였다.
  • 1949년 : 옥천읍으로 승격하면서 군서면 관할이었던 것이 옥천읍으로 그 관할이 변경되었다.
마을이야기
삼베날이라고 불리는 각신리 마을 뒷산에서 마을을 가르고 있는 듯한 줄바위는 마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모습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옥각리에서는 2002년 고속도로 선형개량공사를 할 당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무덤 113기가 발견되었으며, 이중 고려 석곽묘는 향토전시관으로 이전돼 전시되고 있다.
마을의 명소
마을 한쪽 산기슭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마을 뒤로 흐르는 서화천변 산에는 일찍이 백로나 왜가리 등 새들이 둥지를 틀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옥천읍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