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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동이면 적하리
적하리는 이남면(利南面)에 속해 하리(下里)라 불렀다. 자연마을로는 부릉개, 부평, 학사골, 연줄, 용소말, 대밭말(竹村), 올목이 있다.

마을이름유래

적하리 유래는 마을이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하리라 하였고, 부릉개는 주변이 붉은 황토로 되어 있어 부릅재, 붉은고개에서 비롯된 듯하며 이를 한자화 하면서 적령(赤嶺)이라 하였고 두 마을이 합하여 지면서 적하리(赤下里)가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67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하리에 95호 적령리(赤嶺里)에 19호가 살았다.
  • 1910년 :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에 속해 있다가 1914년 4월 1일 동이면(東二面)이 새로 생기면서 동이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이야기
부릉개에는 경주김씨(慶州金氏) 21세조이신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를 지낸 김한준(金漢俊)공이 입향한 이래 360여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세거지이며 경주김씨 선조비인 하동정씨효열비가 있다. 부평촌은 뜨내기들이 모여 생긴 마을로 알려지고, 학사골은 그 모양이 학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줄은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 연지동(蓮池洞)이라 불러왔고, 용소말은 원래 용소께마을이 강가에 있었으나 강물이 범람하여 침수가 자주 되어 수해를 피하여 집단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옛이름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대밭말은 옥천전씨(沃川全氏)의 중시조의 한 분인 고려조에서 판도판서를 지낸 전숙(全叔)이란 분이 낙향하여 금강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던 곳으로 도도한 늙은 선비가 살던 곳이란 뜻으로 기사천(耆士川, 지시래)에서 유래되어 지시래라 불러오고 있다. 지시래 주변에는 구둠티에서 내려오면 연줄마을이 있고 앞산이 큰물산(윤일이봉, 권두봉)과 덕주골이 있다. 용소마을 뒷산이 전지미이며 앞들이 버너들이고, 큰물산 너머 부엉데미, 윗정간이, 드릉골, 잔골대가 있고 아랫정간이 금강 건너에 탕건봉, 함박골, 삼학골, 석밭, 큰골, 바른골, 작은 안자골, 수렁골이 있고 올목 옆에 고소, 올목 앞에 두지벌 강변, 그 강언덕에 용소께, 그곳에서 대밭말 쪽으로 도찬이가 있다. 학사골 주변에는 청령끝, 매봉재, 줄골, 막은골, 나씨와 마씨가 살았다는 나마터 등이 있고 부릉개 주변에는 뱀고지, 보노골, 샘골, 동자말, 소리정이, 북골, 집너머가 있다.
마을의 명소
용소말 북쪽에 못골이 있다. 정간이는 물이 맑은 곳이란 뜻으로 정간(淨澗)이라 쓰기도 하고 이 큰물산에 배남정과 취원정의 두 정자가 있었는데 두 정자 사이란 뜻으로 정간(亭間)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용죽마을에는 2007년에 대밭말과 용소말 사이에 큰 광장을 건설하였는데 팔각정, 광장 및 주차장, 공동 작업장 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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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동이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