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한 거장시인 정지용의 기행문 소개
정지용의 재지(才智)는 산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의 산문으로는 국토기행에서 산생된 기행문류와 시론, 추천평 등을 소개합니다.
작품내의 표현된 문법 및 단어는 현대의 문법 및 단어와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산문으로는 국토기행에서 산생된 기행문류와 시론, 추천평 등을 소개합니다.
작품내의 표현된 문법 및 단어는 현대의 문법 및 단어와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 : 해ㅅ살 → 햇살
예제2
다도해기(多島海記)2 -해협병(海峽病)1
목포서 아홉시반 밤배를 탔읍니다. 낮배를 탔더라면 좀도 좋았으리까마는 회사에서 제주 가는 배는 밤배 외에 내놓지 않았읍니다.
배에 올르고 보니 제주 가는 배로는 이만만 해도 부끄러울 데가 없는 얌전하고도 예쁜 연락선이었읍니다.
선실도 각등(各等)이 고루 구비하고도 청결한 것이었읍니다. 우리는 좀 늦게 들어갔드랬는데도 자리가 과히 뵈좁지 않을뿐외라 누을 자리 앉을 자리를 넉넉히 잡았읍니다.
바로 옆에 어떤 중년 가까이 된 부녀(婦女) 한분이 놀라웁게도 풀어헤트리고 누워 있는데 좀 해괴하고도 어심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무슨 경고 비슷한 말을 건늬어 볼가 하다가 나그네 길로 나선 바에야 이만 일 저만 꼴을 골고로 보기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나서 그만 잠자코 있었읍니다.
등산복을 훌훌 벗어버리고 바랑 속에 지니고 온 갈포 고의 적삼으로 바꾸어 입고 나니 퍽도 시원했읍니다.
10년 전 현해탄 건늬어 다닐 적 뱃멀미 앓던 지긋지긋한 추억이 일기에 댓자곳자 들어눕고 다리를 폈읍니다.
나의 뱃멀미라는 것은 바람이 불거나 안불거나 뉘(파도)가 일거나 안일거나 그저 해협을 건늘적에는 무슨 예절처럼이라도 한통 치러야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번에도 멀미가 오나 아니오나 누어서 기다리는 체재(體裁)를 하고 있노라니 징을 치고 호각을 불고 뚜ㅡ가 울고 하였읍니다.
뒤통수에 징징거리는 엔진의 고동을 한시간 이상 받았는데도 아직 아무렇지도 않었읍니다.
선실에 누어서도 선체(船體)가 뉘(파도)를 타고 오르고 나리는 것을 넉넉히 증험할 수가 있는대 그럴 적에는 혹시 어떤 듯하다가도 그저 그대로 참을 만하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병 중에 뱃멀미는 병 중에도 연애병과 같은 것이라 해협과 청춘(靑春)을 건늬어 가랴면 의례히 앓을 만한 것으로 전자에 여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 뱃멀미도 아니 앓을 만하게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실상 그럴 수 바께 없는 것이 지금 내가 누어서 지나는 곳이 올망졸망한 무수한 큰섬 새끼섬들이 늘어선 다도해 위가 아닙니까.
公海가 아니요 바다로 치면 골목길을 요리조리 벗어나가는 셈인데 큰 바람이 없는 바에야 무슨 큰 뉘가 일 것이겠읍니까.
天成으로 훌륭한 방파림을 끼고 나가는데 멀미가 나도록 배가 흔들릴 까닭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누어 있을 까닭이 없다고 일어날가 하고 망사리노라니 갑판 위에서 통풍기를 통하여 『지용! 지용! 올라와! 등대(燈臺)! 등대(燈臺)! 』하는 영랑(永郞)의 소리였읍니다(우리 일행은 영랑과 현구(玄鳩), 나, 세 사람이었 읍니다).
한숨에 갑판 우에 오르고 보니 갈포 고의가 오동그라질 듯이 선선한 바람이 수태도 부는 것이 아닙니까.
배에 올르고 보니 제주 가는 배로는 이만만 해도 부끄러울 데가 없는 얌전하고도 예쁜 연락선이었읍니다.
선실도 각등(各等)이 고루 구비하고도 청결한 것이었읍니다. 우리는 좀 늦게 들어갔드랬는데도 자리가 과히 뵈좁지 않을뿐외라 누을 자리 앉을 자리를 넉넉히 잡았읍니다.
바로 옆에 어떤 중년 가까이 된 부녀(婦女) 한분이 놀라웁게도 풀어헤트리고 누워 있는데 좀 해괴하고도 어심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무슨 경고 비슷한 말을 건늬어 볼가 하다가 나그네 길로 나선 바에야 이만 일 저만 꼴을 골고로 보기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나서 그만 잠자코 있었읍니다.
등산복을 훌훌 벗어버리고 바랑 속에 지니고 온 갈포 고의 적삼으로 바꾸어 입고 나니 퍽도 시원했읍니다.
10년 전 현해탄 건늬어 다닐 적 뱃멀미 앓던 지긋지긋한 추억이 일기에 댓자곳자 들어눕고 다리를 폈읍니다.
나의 뱃멀미라는 것은 바람이 불거나 안불거나 뉘(파도)가 일거나 안일거나 그저 해협을 건늘적에는 무슨 예절처럼이라도 한통 치러야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번에도 멀미가 오나 아니오나 누어서 기다리는 체재(體裁)를 하고 있노라니 징을 치고 호각을 불고 뚜ㅡ가 울고 하였읍니다.
뒤통수에 징징거리는 엔진의 고동을 한시간 이상 받았는데도 아직 아무렇지도 않었읍니다.
선실에 누어서도 선체(船體)가 뉘(파도)를 타고 오르고 나리는 것을 넉넉히 증험할 수가 있는대 그럴 적에는 혹시 어떤 듯하다가도 그저 그대로 참을 만하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병 중에 뱃멀미는 병 중에도 연애병과 같은 것이라 해협과 청춘(靑春)을 건늬어 가랴면 의례히 앓을 만한 것으로 전자에 여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 뱃멀미도 아니 앓을 만하게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실상 그럴 수 바께 없는 것이 지금 내가 누어서 지나는 곳이 올망졸망한 무수한 큰섬 새끼섬들이 늘어선 다도해 위가 아닙니까.
公海가 아니요 바다로 치면 골목길을 요리조리 벗어나가는 셈인데 큰 바람이 없는 바에야 무슨 큰 뉘가 일 것이겠읍니까.
天成으로 훌륭한 방파림을 끼고 나가는데 멀미가 나도록 배가 흔들릴 까닭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누어 있을 까닭이 없다고 일어날가 하고 망사리노라니 갑판 위에서 통풍기를 통하여 『지용! 지용! 올라와! 등대(燈臺)! 등대(燈臺)! 』하는 영랑(永郞)의 소리였읍니다(우리 일행은 영랑과 현구(玄鳩), 나, 세 사람이었 읍니다).
한숨에 갑판 우에 오르고 보니 갈포 고의가 오동그라질 듯이 선선한 바람이 수태도 부는 것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