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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동이면 세산리
이남면(伊南面) 상리(上里)라 불렀다. 자연마을로는 돌꽂이, 천수골, 용암말, 탁운, 오가골이 있다.

마을이름유래

세산리는 원래 마을 근방이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가너메, 가느뫼라 부르고 있었는데 한자화 할 때 세산(細山)이라 쓰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돌꽂이, 천수골, 용암말, 탁운, 오가골이 있다. 돌꽂이는 마을옆에 곶감꽂이처럼 생긴 돌이 있었는데 경부선철도 개설당시 모두 파괴하여 침목받침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자화 할 때 “돌꽃”이라는 뜻으로 석화(石花)라 하였는데 돌이 있는 곳 석처(石處)나 돌곶이 석곶(石串)이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용암마을은 큰 느티나무가 있어 괴촌(槐村)이라 부르다가 용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용암(龍岩)말 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아랫마을이 탁운(卓雲)이기 때문에 두 마을 합하여 용운(龍雲)이라 부른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119호에 15세 이상의 사람이 632명 살았다.
  • 1910년 :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에 속했다.
  • 1914년 : 4월 1일 동이면(東二面)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이야기
석화는 풍천임씨(豊川任氏) 집성촌으로 풍천임씨 11세조이신 한성판윤을 지낸 임경윤공이 낙향한 이후 20여대를 이어 살고 있다. 주변에는 두골배기, 앞산, 구둠티, 농공단지가 형성된 미내, 작은방가, 큰방가, 지르리들, 장구먹이, 너덜이, 앞들, 구리골, 흔두골, 사근다리, 못골 등이 있다. 용운마을은 포도의 최초재배지이며 시설포도 재배법을 처음으로 도입, 기술보급에 이바지 한 공이 큰 마을이다. 큰길가에 마을자랑비가 있다. 주변에는 황골, 넉골, 행상바위, 중간말, 웃말, 건너말, 이원 건진리로 넘어 다니던 가운데재, 응골, 오가골이 있고, 탁운에는 서당말, 언덕말, 아랫말이 있고, 마을 뒤로 도덕봉, 밀버봉, 명타골, 배남재, 깐치날, 돌림병에 죽어간 어린 시신들의 덕다리가 있던 송장날, 공동지, 오솔이골, 참성골이 있다.
마을의 명소
천수골은 약 450여 년 전에 여흥민씨 18세조인 민성근(閔聖近)공이 입향한 후 누대를 거쳐 민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에 여흥민씨 세거비(麗興閔氏 世居碑)가 있다. 성골(서원골)에는 1571년 서희여가 세운 쌍봉서원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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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동이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