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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한 거장시인 정지용의 기행문 소개
정지용의 재지(才智)는 산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의 산문으로는 국토기행에서 산생된 기행문류와 시론, 추천평 등을 소개합니다.
작품내의 표현된 문법 및 단어는 현대의 문법 및 단어와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 : 해ㅅ살 → 햇살
예제1
시(詩)의 옹호
신은 愛로 자연을 창조하시었다. 애에 협동하는 시의 영위는 신의 제2창조가 아닐 수 없다.
이상스럽게도 시는 사람의 두뇌를 통하여 창조하게 된 것을 시인의 여예로 아니할 수가 없다.
회화, 조각, 음악, 무용은 시의 다정한 자매가 아닐 수 없다.
이들에서 항시 환희와 이해와 추이를 찾을 수 없는 시는 화조월석(花朝月夕)과 사풍세우(乍風細雨)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구성, 조형에 있어서는 흔히 손이 둔한 정신의 선수만으로도 족하니 언어와 문자와 더욱이 美의 원리와 향수(亨受)에서 실컷 직성을 푸는 슬픈 청빈의 기구를 가진 시인은 마침내 비평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고 만다.
시가 실제로 어떻게 제작되느냐, 이에 답하기는 실로 귀치 않다.
시가 정형적 운문에서 別한 이후로 더욱 곤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도제가 되어 종장(宗匠)의 첨삭을 기다리라.
시가 어떻게 탄생되느냐. 유쾌한 문제다. 시의 모권(母權)을 감성에 돌릴 것이냐 지성에 돌릴 것이냐. 감성에 지적 통제를 경유하느냐
혹은 의지의 결재를 기다리는 것이냐. 오인(吾人)의 어떠한 부분이 詩作의 수석이 되느냐. 또는 어떠한 국부가 이에 협동하느냐.
그대가 시인이면 이따위 문제보다도 달리 총명할 데가 있다.
비유는 절뚝바리. 절뚝바리 비유가 진리를 대변하기에 현명한 長女노릇 할 수가 있다.
무성한 감람 한포기를 들어 비유에 올리자. 감람 한포기의 공로를 누구한테 돌릴 것이냐. 태양, 공기, 토양, 우로(雨露), 농부, 그들에게 깡그리 균등하게 논공행상(論功行賞)하라. 그러나 그들 감람을 배양하기에 협동한 유기적 통일의 원리를 더욱 상찬하라.
감성으로 지성으로 의력(意力)으로 체질로 교양으로 지식으로 나중에는 그러한 것들 중의 어느 한가지에도 기울리지 않는 통히 하나로 시에 대진하는 시인은 우수하다. 조화는 부분의 비협동적 단독행위를 징계한다.
부분의 것을 주체하지 못하여 미봉한 자취를 감추지 못하는 시는 남루하다.
경제사상이나 정치열에 치구하는 영웅적 시인을 상탄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가 음악과 회화의 상태 혹은 운율의 파동, 미의 원천에서 탄생한 기적의 아(兒)가 아니고 보면 그들은 사회의 명목으로 시의 압제자에 가담하고 만다.
소위 종교가도 무모히 시에 착수할 것이 아니니 그들의 조잡한 파아나티즘이 시에서 즉시 들어나는 까닭이다.
종교인에게도 시는 선발된 은혜에 속하는 까닭이다.
시학과 시론에 자주 관심할 것이다.
시의 자매 일반예술론에서 더욱이 동양화론 서론(書論)에서 시의 향방을 찾는 이는 비뚤은 길에 들지 않는다.
경서(經書) 성전류(聖典類)를 심독(心讀)하야 시의 원천에 침윤하는 시인은 불멸한다.
시론으로 그대의 상식의 축적을 과시하느니보다는 시 자체의 요설의 기회를 주라.
시는 유구한 품위 때문에 시론에 자리를 옮기어 지꺼릴 촨스를 얻음 직하다.
하물며 타인을 훼상하기에 악용되는 시론에서야 시가 다시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열정(劣情)은 시가 박탈된 가엾은 상태다. 시인이면 어찌하야 변설로 혀를 뜨겁게 하고 몸이 파리하느뇨. 시론이 이미 체위화하고 시로 이기었을 것이 아닌가.
시의 기법은 시학 시론 혹은 시법에 의탁하기에는 그들은 의외에 무능한 것을 알리라. 기법은 차라리 연습 숙통(熟通)에서 얻는다.
기법을 파악하되 체구에 올리라. 기억력이란 박약한 것이요, 손끝이란 수공업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구극(究極)에서는 기법을 망각하라. 탄회에서 우유(優遊)하라. 도장에 서는 검사(劍士)는 움지기기만 하는 것이 혹은 거저 섰는 것이 절로 기법이 되고 만다.
일일이 기법대로 움지기는 것은 초보다. 생각하기 전에 벌써 한대 얻어맞는다. 혼신(渾身)의 역량 앞에서 기법만으로는 초조하다.
진부한 것이란 구족(具足)한 기구(器具)에서도 매력이 결핍된 것이다. 숙련에서 자만하는 시인은 마침내 맨너리스트로 가사제작에 전환하는 꼴을 흔히 보게 된다. 시의 혈로는 항시 저신(抵身)타개가 있을 뿐이다.
고전적인 것을 진부로 속단하는 자는, 별안간 뛰어드는 야만일 뿐이다.
꾀꼬리는 꾀꼬리 소리 바께 발하지 못하나 항시 새롭다. 꾀꼬리가 숙련에서 운다는 것은 불명예이리라. 오직 생명에서 튀어나오는 항시 최초의 발성이야만 진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돌연한 변이를 꾀하지 말라. 자연을 속이는 변이는 참신할 수 없다.
기벽스런 변이에 다소 교활한 매력은 갖출 수는 있으나 교양인은 이것을 피한다.
귀면경인(鬼面驚人)이라는 것은 유약한 자의 슬픈 괘사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은 완전히 자연스런 자세에서 다시 비약할 뿐이다. 우수한 전통이야말로 비약의 발디딘 곳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생애에 따르는 고독에 입문 당시부터 초조하여서는 사람을 버린다. 금강석은 석탄층에 끼웠을 적에 더욱 빛났던 것이니, 고독에서 온통 탈각할 것을 차라리 두리라.
시고(詩稿)를 끌고 항간매문도(巷間賣文徒)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은 주책이 없다.
소위 비평가의 농락조 월단(月旦)에 희구(喜懼)하는 것은 가엾다.
비평 이전에서 그대 자신에서 벌써 우수하였음 즉하다.
그처럼 소규모의 분업화가 필요하지 않다. 시인은 여력으로 비평을 겸하라.
일찍이 시의 문제를 당로(當路)한 정당(政黨)토의에 위탁한 시인이 있었던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시와 시인을 다소 정략적 지반운동으로 음모하는 무리가 없지도 않으니, 원인까지의 거리가 없지 않다.
그들은 본시 시의 門外에 출산한 문필인이요, 그들의 시적 견해는 애초부터 왜곡되었던 것이다.
비툴어진 것은 비툴어진 대로 그저 있지 않고 소동한다.
시인은 정정한 거송(巨松)이어도 좋다.
그 위에 한 마리 맹금이어도 좋다.
굽어보고 고만(高慢)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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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