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읍면정보
대표-읍면정보-청산면-주민알림마당-주민게시판 상세보기 - 제목, 담당부서, 내용, 파일,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정보 제공
리영희의 좌우날개로 날다(14/16) -북한의 남한화?
작성자 : 고은광순 작성일 : 2023-09-10 조회 : 45
담당부서
윤정부의 엉뚱한 '새날개론'은, 원작자인 리영희교수의 글을 난독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우리 모두 공부해서 남 줍시다!
------------------------------------------
1994년 10월 8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리영희 한양대 교수 <북한의 남한화?>

며칠 전 또 통일문제에 관한 대규모의 국제학술회의에 초청되어 발언할 기회가 있었다. "또"라고 말하는 것은 지난 몇 해 사이에는 이런 기회가 한 달에도 몇 차례나 됐기 때문이다. 동·서독이 서독의 흡수형식으로 통일된 뒤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이른바 "통일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라는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장은 하나같이 호화롭다. 그러나 며칠씩 계속된 뒤의 인상은 "말의 잔치"와 돈의 낭비라는 허무감이다.

이번 "발표회"도 그랬지만 요란하게 벌이는 통일문제에 관한 어떤 국제회의에서 건 한국 쪽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서 있는 일치된 기본자세가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변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관료들은 물론, 교수·전문가·아마추어 등 너나 할 것 없이 한결같이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족통일의 절대적 전제조건이다.

북한의 국가이념, 정치체제, 투쟁전통, 경제·사회제도, 생활관습, 가치관, 개인 행동 양식 등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론(?)과 주장이다.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이 남한과 같은 모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로서 장황하게 내세우는 것이 동·서독의 경우이다.
마치 레코드를 튼듯이 반복되는 한국 쪽 발언자들의 천편일률적인 주장이 판을 치는 곳에서 나는 외롭다. 먹혀들지 않는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각기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온 두 개의 사회가 다시 하나가 되자는데 어떻게 한쪽만 변하고 다른 한쪽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사회는 절대 선이고 어떤 사회는 절대 악일 수 있는가? 마침 남한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한 "지존파" 사건과 국가운영의 총체적 부정과 타락을 증명한 인천시 세무비리 사건 등이 한창이었다. 북한 사회도 이렇게 "남한화"해야 하는 것인가? 어째서 통일을 하자면서 자기의 국가·사회·체제·제도·관습·가치관·행동양식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반성도 없을까? 북한을 온통 범죄사회로 만들고 난 뒤에 이루어지는 통일이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민족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통일을 논할 때, 북한이 우리처럼 되기를 요구하는 남한의 얼굴을 한 번쯤 거울에 비추어 보자. 여자들이 밤길을 두려워하고, 택시를 타도 끔찍한 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무서워하고, 부모를 죽이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강도나 사기꾼으로 경계해야 하고, 공무원들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고. 이런 사회를 북한에도 강요하는 통일 논리가 상대방에 어떻게 비칠까?

"북한의 동독화"론에 대해서도 외로운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입장은 언제나 편하지 않다. 북한이 동독만큼 되기를 요구하려면 남한도 서독만큼 돼야 하지 않을까? 서독은 언제나 정부 예산에서 국민 보건과 사회복지 및 보장을 위한 지출이 군사비의 거의 두 배가 됐다. 사회주의 동독보다도 더 사회주의적이었던 것이다. 남한은 그동안 거꾸로 군사비가 보건사회보장 및 복지를 위한 지출의 3배를 넘었다. 무슨 자격으로 북한한테만 동독처럼 되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남한과 제반 정세·조건이 흡사한(했던) 중화민국(대만)조차 지난 8월 처음으로 공산당을 법적으로 허용할 만큼 성숙했다. 거의 "질(質)적 변화"이다. 세계가 변하고, 대만조차 변하고, 북한도 변하고 있다. 남한만이 변화를 거부하면서 남북한의 통일과 민족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일까? 내가 이른바 "통일문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할 때마다 우울해지는 이유이다.

연재 리영희의 좌우 날개로 날다
파일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청산면 김효중
연락처 : 043-730-4663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