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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작성자 : 곽*호 조회 :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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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 김매던 아낙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먹밥 싸 들고 품 팔러 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아니 웬 굴비여?
아낙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잘 살길 기원하며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떡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두 마리가 또 올랐다.
―또 - 웬 굴비여?
계집은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당신이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혀서 앞으로는 안 하고 뒤로 혔구만요?
- 이놈의 여편네야! 사내 밑에 깔리지 말란 말이여! 알았어? 아이그 이걸 참!
 

그리고 며칠 후 또 굴비 장수가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3마리가 또 올랐다.
또 - 또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 당신이 사내 밑에 깔리지 말라 혀서 내가 사내를 깔고 앉았구만요!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을 마시며 노래 불렀다.
 


이 시는“시하늘”2003년 가을호에 수록된
오 탁번(시인이며 소설가로 고대 교수)의 “굴비"라는 시입니다.
시인은“굴비”를 발표하면서
“항간의 음담인데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민중의 해학적인 음담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파격적인 시로
오탁번의 입담이 자연과 우주와 가난이 함께 미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순박하고 가난한 부부의 애잔함이 우리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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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