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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좌우날개로 날다(2/16) -문제를 근본에서 생각하는 교육
작성자 : 고은광순 조회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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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대통령의 새 날개 운운하는 비유는 리영희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으로,
주권자들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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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22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리영희 한양대 교수

[문제를 근본에서 생각하는 교육]
전국 대학의 새 학년도 입학시험 결과가 어제 오늘로 모두 그 발표가 끝났다. 해마다의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전국 70만 가정에서 기쁨과 한숨이 교차할 것이다. 빨리 4, 5년이 후딱 지나, 인구 연령구조의 변화로 진학 희망자 수와 대학 수용능력이 1 대 1이 되는 행복한 때가 오면 좋겠다.

각 대학의 금년 입학시험은 이른바 "주관식", "논리성" 측정 형식으로 바뀐 첫 시도였다. 오랜 "사지선다"식 단순사고 교육 탓으로, 수험생들의 주관식 문제인식과 자기표현 능력이 "딱할 정도였다"는 것이 여러 입시관리 책임자들의 한결같은 감상이었다.

논술시험의 문제(제목)의 뜻도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몇십년 동안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시피 해온 한국의 공교육에서 그것 아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입시관련 책임교수들의 공통된 소감을 들으면서 불현듯 프랑스의 대학입시에 관해 읽은것이 떠올랐다. 지난해 프랑스 전국의 고교 졸업생 가운데, 대학진학 희망자는 한국보다 약 10만명이 적은 56만명이었다.

하루 한 과목씩, 며칠에 걸쳐서 치르는 시험의 첫날 과목이 철학이다. 지난해 철학시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네개의 문제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쓰는 것이었다.
1. 일(노동)과 오락은 언제나 구별할 수 있는가? 2.사실은 언제나 사실처럼 보이는가? 3.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 4. 진리는 (인간을) 구속하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하는가? 이 철학시험은 인문·사회계통 응시자에게만 부여되는 게 아니다. 모든 학과지망생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시간도 한 시간이 아니라 적어도 3~4시간으로 자유롭다. 그야말로 "논술"이다.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의 첫 시간이 "철학"이라는 사실부터 얼마나 철학적인가? 한국사회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겨우 16~17살의 소년·소녀에게 인간과 세상의 문제·현상·관계 등을 "근본에서 생각"하는 훈련과 소양을 갖추었는지를 가리는 시험제도이다.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 시험이다.

내가 만약 46년 늦게 프랑스에 태어나, 18살 소년으로이 시험장에 앉았으면 네개의 문제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까? 비교적 쉬운 제3문을 쓸까? 그래도 철학시험인데! 제1문도 제2문도 만만치는 않다. 생각 끝에 기왕이면 제4문 "진리는 구속하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하는가?"로 하겠지..잠시 그런 즐거운 환상에 젖어본다.

지금은 아직 바칼로레아의 시기가 아니어서 알 수 없으나, 지난해 철학시험에는 네개 문제와 별도로 사르트르, 베르그송 등등 철학자들의 글 속에서 딴 몇 줄을 예문으로 주고, 그것을 해석하라는 부수적 과제가 한 문항씩 있었다.

그뿐 아니다. 한국의 대학시험처럼 소년·소녀의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식이 아니라, 수학시험에는 네쪽 분량의 "공식집"을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돼도 퇴장시키지 않고 다른 보상책을 강구하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할 것이다(어쩌면 두려워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대동소이한 시험방식이며, 교육정신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나름의 사상을 갖게끔 문제를 근본에서 생각하는 교육을 통해서만 사회과학도 자연과학·공학·의학도 제대로 발전한다는 인간관·세계관이다.

"생각"은 "사상"을 낳는다. 그런데 "사상"이라 하면 "반공주의 사상"밖에 모르고 그것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광적이고 단세포적 사고가 지배해온, 그리고 지금도 거의 변화한 것이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아직도 꿈 같은 이야기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그것도 여러 시험과목의 첫 과목으로 루소, 데카르트, 마르크스, 베르그송, 프로이트 등의 이론과 사상을 마음대로 구사해서 논술케 하는 인간교육, 그리고 그런 사회와 문화..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고 사고하는 인간들의 사회, 이것이 우리 교육의 지향이고 목표여야 한다. 대학입시 결과를 보는 감상이다.

마침, 바로 우리 나라에서 그러한 인간형의 모범이었던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는다. 통일의 날을 못 보고 가신 문익환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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