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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5일 청산면 노루목재 위령비 제막에 감사하며(3)-육영수 살해범은?
작성자 : 고** 작성일 : 2022-09-18 조회 : 376
담당부서
일요일이라 생각난 김에 옥천군민, 청산면민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씁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실미도로 떠난 7인의 옥천청년들>(2021 모시는 사람들)을 쓰면서 박정희에 대해 엄청난 탐구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편집자로 참여하여 목숨 걸고 만든 책 <박정희 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를 쓰며 더 깊게 박정희를 연구하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옥천이 자랑으로 여기는 육영수는 북이 보낸 문세광이 죽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옥천으로 귀촌한 내게 육영수의 사망은 더욱 더 큰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런데 아니었네요.
MBC. SBS 에서 2005년 그것이 알고 싶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방영했습니다. SBS에서는 2021년 꼬리에꼬리를 무는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육영수 살해를 다루었습니다.        1989년 당시 사건 수사를 맡았던 서울시경의 감식계장 이건우는 미국으로 이민간 뒤 월간 다리와 인터뷰를 통해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결론은? 육영수는 박정희가 죽였다는 것이지요.

찬찬히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옥천 분이라면 육영수의 억울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박정희의 그 살벌한 악행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셔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 박정희의 기본을 알고 가자면...
일제시대 독립군 잡던 일본(만주)군인이었던 것은 아시지요?
일본육사 들어가며 견마지로(개와 말처럼 충성하겠다)의 혈서를 쓴 것이 1939년 신문에도 났었지요.
해방후에는 좌익이 대세인 것을 알고 좌익이 되었는데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터지자 좌익조직에 포함되어 있다가 잡히고 맙니다. 박정희는 조직을 다 불고 1949년 11월 감옥을 나옵니다. 면직 되었으나 다음 해에 625가 터지는 바람에 소령으로 복귀해서 부산에서 대통령이 될 궁리에 골몰합니다. 돈 많은 북에서 내려온 조력가를 물주로 전쟁통에 탱자탱자 술 먹으러 다니며 돈을 갈취할 생각을 합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되면 북에 두고온 당신 재산 다 찾아주겠다고 유혹하며...(1950 전쟁 통에 본처와 이혼도 하고 한 달 후인 12월에 육영수와 재혼하지요.) 그리고 1953년부터 3년간 물주에게 돈을 갈취합니다.(박정희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 / 피플파워. 2022. 참조)

각설하고... 1974년 8. 15. 국립극장/// 문세광이 범인이 아닌 이유.

1) 경찰 등 경호인력에게 15일 당일, 몸, 소지품 검색 금지 지시가 내려옴.

2) 일찍 참석해서 뒤쪽에 앉아있던 문세광이 가슴에 비표를 달지 않아 경찰이 내보냈는데        뒤늦게 박정희를 수행하며 들어온 청와대 경호실팀이 로비의 문세광을 보고 놀라며 들여보내라 지시함

3)문세광이 일본 파출소에서 훔쳤다는 총은        5발이 장전되는 리볼버 권총.
총에 한 알 남아있었고, 한 알은 자기 발을 쏘았으며 3발은 연단, 태극기, 천정에 쏘았음. 육영수는 문세광의 총에 맞지 않았다.

4)문세광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 여행사 직원 두 명이 호텔방에 한국말을 하는 의문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김종필 여직원들에게 묵비 지시)

5) 당일 밤 경호실에서 현장 청소 후 경찰수사팀에 수사 지시

6) 문세광 31시간 묵비했으나 당일 저녁부터 일제히 조총련개입 보도 시작

7) 문세광이 호텔에서 타고 온 고급승용차(포드)는 위장번호판을 달고 있어 차적조회 불가.

8) 합창단여학생은 경호원 총격에 사망-공소장에는 여학생도 문세광이 죽인 것으로 기록(경호실이 과실치사로라도 개입되는 것을 배제하려는 시도)

9)문세광 선배 등 일본에 가서 배후세력 등 전혀 수사하지 않은 한국 수사팀

10) 문세광은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보도되고 현장검증에 불참. 현장검증에는 대타를 투입

11) 문세광이 권총을 훔치기 위해 침입했다는 일본의 파출소에서는 문세광의 지문, 족적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음.

12) 문세광은 조총련계가 아니라 민단계의 가난한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총을 다루어본 적도 없는 초짜였지요.

취재팀은 박정희 사후 10년이 지나 미국에서 양심선언을 한 사건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이었던 이건우에게 왜 이 사실을 이제야 털어놓느냐 질문.
이건우는 사건 당시 사실을 밝혔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니...

당시 박정희의 공포정치, 조작정치가 어땠는지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왜 아내를 죽였느냐고요?

육영수는 친정 아버지의 축첩과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 자랐지요. 주색잡기에 중독된 박정희를 말려보려고 무던 애를 썼습니다.        박정희는 극도로 싫어했지요. 박정희는 정신과 용어로 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자기애성 인격장애)였거든요.

NPD의 특징은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 팡파레, 환호, 영웅대접,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 충고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히스테릭한 성격 / 저항하는 자에겐 보복 앙갚음/ 술 섹스 중독... 등인데 박정희는 100% 갖추고 있었지요.

그래서 본처를 버리고 재혼을 한 육영수였지만 중년 이후에는 너무나 짜증 나는 상대였습니다. 2시간만 눈에 안 띄어도 육영수는 비서, 운전기사를 찾으러 나섰거든요. 게다가 중앙정보부 이후락을 시켜 눈엣 가시인 김대중을 죽이려다가 실패했는데 8월 14일 조사 마무리를 대충 얼버무리고 끝냈습니다. 국민들의 저항이 심각해질 수 있는 시점이었지요.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려고 3선개헌에 유신개헌을 했는데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도 계속되었고요.

그런데 육영수의 사망으로 이 골치 아픈 사건들이 일거에 숨 죽어들고 말았지요. 그 뒤로 중앙정보부의 채홍사가 리스트에 200명의 여자들을 올려놓고 박정희에게 대령을 했다지요. 쨍쨍거리는 마누라 없이 마음 놓고 즐겼겠지요.

        가장 큰 소득은 또 다시 북한을 혐오집단으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미국의 지원에 힘 입어, 북을 혐오의 집단으로 만들어가면서 (수백 명이 조작된 간첩사건에 휘말려 사형, 고문, 구속을 당했는데...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요?) 3선개헌을 할 때도 유신헌법을 만들 때에도 북의 위협을 구실로 앞에 내세웠습니다.

아효...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총총
<박정희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 에는 저자의 어머니의 생생한 북한사투리가 나옵니다.

"박정희 저 간나새끼는 천벌을 받아서 부하 총에 맞아 죽었지... 어찌 사람으로서 자기 자식을 낳은 부인을 죽일 수 있나. 지 마누라 죽인 놈이 사람임메? "

박정희의 육영수 살해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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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