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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달과 초승달
작성자 : 곽*호 조회 :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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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망하던 해에 궁중 땅 밑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그 등에 '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이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왕이 무당에게 물어보니 둥근 달은 이미 차서 앞으로 이지러지겠고 초승달은 앞으로 차게 될 것이라는 풀이를 내놓았다.
당연히 백제에 불리한 해석이었다.
의자왕은 크게 노하여 무당을 죽여버렸다.
그 때 곁에서 다른 사람이 말했다.
"둥근 달은 왕성하고 초승달은 미미하니 백제는 성하고 신라는 쇠약해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의자왕은 비로소 크게 기뻐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에 백제 700년 역사는 막을 내리고 의자왕은 포로로 붙잡혀 왕궁에서 무릎을 꿇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당시 백제는 둥근 달과 초승달에 비유될 만큼 신라보다 풍족하고 잘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신라에 망했으니 흥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부(富)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가난한 나라보다는 적당히 부유하고 풍족한 나라들이 망한 사례가 역사에는 훨씬 많이 나온다.
이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갈등과 불화가 더 다스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역사가 입증한다는 뜻일 게다.

백제가 망할 무렵의 사회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왕은 궁인과 더불어 음황(淫荒),탐락(耽樂)하고 음주를 그치지 않았다.
좌평 성충이 극간하자 왕이 노하여 옥에 가둬버렸다.
이런 연유로 더 이상 간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서자 41명을 모두 좌평(오늘날의 장관)으로 삼고 식읍을 주었다.
큰 한재가 들어 국토가 적지(赤地)가 되었다.
많은 여우들이 궁중으로 몰려왔는데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올라가 앉았다.
태자궁 암탉이 작은 참새와 교미했다.
사비하(금강)에 길이가 세 길(三丈)이나 되는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다.
여자 시체가 생초진에 떠 있었는데 길이가 18척이나 됐다.
궁중 괴수목이 마치 사람 곡성처럼 울어대고 밤에 귀신이 궁성 남쪽에서 울었다.
서울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
풍우가 사납게 일고 절 탑에 벼락이 떨어졌다.
많은 개들이 길에 모여 혹은 짖고 혹은 울다가 갑자기 흩어졌다.
한 귀신이 궁중에 들어와서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고는 곧 땅 속으로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신라는 국경과 성곽을 정비하고 활발한 외교를 통해 당나라와 연합한다.
계백과 맞붙은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은 자신의 어린 아들 반굴(盤屈)에게 출정을 명령한다.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스스로 희생양이 되라는 뜻임을 흠순도 알고 반굴도 알았지만 반굴은 기꺼이 명령을 받든다.
반굴이 용맹하게 싸우다 죽자 이번엔 좌장군 품일이 역시 16세에 불과한 아들 관창(官昌)을 내보낸다.
오늘날로 치면 국방장차관이나 장성들이 앞을 다투어 생떼 같은 자식들을 사지에 던져 넣었다는 얘기다.

비록 초승달과 같았지만 신라는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사회 전체의 정신적, 도덕적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를 훌륭히 이행했다.
그 결과 초승달은 흥하고 둥근 달은 망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본래 사람 사는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민심은 지배층의 행태가 상식을 벗어날 경우 급격히 이반한다.
백제에서 일어난 괴변(怪變)들도 지배층의 타락과 독선, 공직자 임면(任免)의 불합리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조가 남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후손들의 선택에 달렸다.
기분 나쁘게도 백제 망국의 기록들과 많은 부분이 흡사한 오늘,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둥근 달인가,초승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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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