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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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초기 고시산군이라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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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현종 경산부 성주에 소속되었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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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현령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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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12년 12년에 일시 폐현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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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 5년에 옥주라 칭하여 주지사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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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종 13년에 이산, 안읍, 양산 3현을
병합 옥천이라 하였으며 -
순종 융희 4년에 양산현을 영동군으로 이관하고
청산현을 폐하여 옥천으로 이관 -
1949 옥천면이 옥천읍으로 승격되어
1읍 8면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음
본래 신라의 고시산군(古尸山郡)을 경덕왕 때 관성(管城)으로 고쳤으며, 고려 8대 현종시 경산부(京山府=星州)에 속하였다가 16대 인종시
다시 현령을 두고 관장하였던 바 18대 명종시(1183년)에 아전과 백성들이 현령인 홍언(洪彦)을 잡아 가두는 사건이 발생하여 이에 관호를 폐지하였다.
이후 25대 충선왕시(1313년)에 지옥주사(知沃州事)로 승격시켜 경산부에 속해 있었던 이산(利山), 안읍(安邑), 양산(陽山)의 3현을 관리토록
하였고, 조선 3대 태종시(1413년)에는 지명을 沃川으로 고치고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편입시켰다.
동부는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마니봉, 월리봉, 대성산등이 중첩되어 있고 금강 상류가 감입곡류(바위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마치 뱀이 움직인 것 같다하여 사행이라고도 함)를 하며 북서류하고, 경부고속도로 및 철도가 군내를 관통하고 있으며 사금, 흑연 등의 광산물과 하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명승고적이 많고, 삼국시대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진 삼국공방과 백제 성왕이 전사한 곳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동쪽으로 경북 상주시, 서쪽으로 대전광역시, 남쪽으로는 영동군, 북쪽으로 보은군에 인접한 약 539.22㎢의 지역으로 대전의 근교 농업지로서 또는 대전 근교의 공업단지로서 발전이 기대되며, 대전위성도시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남한의 중앙점에 위치하여 앞으로 옥천군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앞장설수 있는 발전상이 기대되는 한국 최고의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