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금빛 잔물결이 먼 산의
실루엣을 머금고 있는 풍경
아이들 한 무리 중 몇몇은 미끼를
낚시 바늘에 꿰어 대나무 엮어 만든
낚시줄 타래를 물결따라 풀어간다.
당겼다 풀어주기를 몇 차례, '파르르' 전해지는 손맛을 즐기며 잡은 피라미와 갈라리를 즉석에서 손질한다. 그 옆에 다른 아이들은 식사당번, '낑낑' 거리며 날라 온 큼직한 돌을 아궁이 삼아 어머니 몰래 내온솥단지를 걸어 불을 피운다.
퍼다 부은 강물은 잘도 끓는다.
끓는 물에 막 잡아 손질한 피라미, 갈라리 먼저 넣고
푹 삶아질 동안 양념거리를 손질한다. 피라미 갈라리가 통째로 들어간 육수에 라면 몇 봉지와 파, 마늘, 깻잎에 고추장 풀어 넣고 끓여 먹으면 천렵 나온 아이들의 호사스런 점심으로 그만이었던 시절. 어디서 배웠는지 매운탕 끓이는 솜씨 좋은 친구 덕에 배를 채운 아이들은 여울 낚시하는 어른에게 쫓겨 멀찌감치 위로 올라가 물장구치며 놀기도 하고, 물새알 주우러 모래사장의 풀밭을 샅샅이 뒤지다가 어느새 잠자리의 유혹에 넘어간다.
물새알은 그만 잊어버리고 잠자리를 쫓아다니다 저희들끼리 모래밭을 뒹굴며 뛰어놀던 어린시절 금강의 추억이 아련하다.이 뒤지다가 어느새 잠자리의 유혹에 넘어간다.
강가의 낮은 언덕 쯤,
강가의 낮은 언덕 쯤,하늘을 머금어야 올려다 볼 수 있는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와 그 옆, 허술한 싸리나무 울타리에 삽짝문 하나 없는 외딴 초가집. 마당은 모래사장으로 이어졌으며, 손질 끝난 그물이 빨래 대신 바지랑대에 걸려 해 바라기 하던 어부의집도 그렇고, 손바닥만한 논밭이 올망졸망한 귀퉁이에 초가집 서너 채가 마을의 전부인 강마을 앞에는 강가 모래사장의 풀밭에 매어놓은 누런 황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던 정감 넘치는 정경도 푸근했었다.
어릴 적 강변의 추억과 그 아름답던 강마을 정취는 먼 기억속의 편린 속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으나 이제는 기억을 더듬어 더 이상 찾아 갈 수 없는 추억의 땅이 되었다. 1975년 3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완공한 대청댐의 담수가 시작되면서 어릴 적 추억이 무르익던 옥천의 안남면과 안내면의 강마을은 금강의 아름답던 여울과 함께 물속에 잠기었다. 그 언저리 높게만 보였던 산들은 제 키만큼 불어난 물에 산자락을 드리우고, 더러는 물 돌아가는 산모롱이가 되고 더러는 섬이 되어 호수의 잔물결만 찰싹인다.
실개천 흐르는 듯 맑디 맑았던 금강 여울이 대하(大河)를 보는 듯 하게 변하여 대청호로 흘러들고, 대청호는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의 땅에서 다도해(多島海)의 풍광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호수의, 물안개 피어올라 자무룩한 아침의 고요가 있고, 안개 걷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비경이 있으며, 해질 무렵 황금빛 잔물결이 먼 산의 실루엣을 머금고 있는 풍경 속에서 대청호 주변 옥천의 산하는 이제 호수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