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언어의 시인 정지용을 만나다.
이 문학관은 정지용 문학의 실체를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체험 할 수 있도록 문학전시실과 영상실, 문학교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 로비에서 정지용의 밀랍인형이 벤치에 앉아 관람객을 맞이한다.
인형의 뒤에는 고향풍경의 벽화가 있고, 벤치의 가운데 정지용이 앉아 있으니 들어오는 사람들 마다 양 옆에 앉아서 기념촬영을 하는 명소가 되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관람자가 들어가면 자동으로 인식하여
“ㄱ”자의 벽, 두 면에 교차되며 아름다운 영상이 상영된다.
잊혀져가는 우리 고향의 정경을 오롯이 그려낸 국민시인 정지용.
일제강점기는 그에게 친일 시인이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했으며 해방 후 좌우익 대립의 혼돈은 그를 방황케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는 아예 그를 월북시인으로 낙인찍어 그와 그의 문학을 묻어버렸다. 전혀 원하지 않았건만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역사의 폭력을 감내해야만 했던 우리 민족.
그의 생애 속에서 질곡스런 우리 역사가 배어나온다.
동선을 따라 좌측으로 이어진 벽면을 장식한 지용문학지도는
‘한국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되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시문학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정지용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볼 수 있다. 이후 1974년에 헐린 그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집에 조그만 청동의 표지판이 이곳이 그곳이었음을 조용히 알리던 때를 지나 그곳에 1996년도에 원래의 모습으로 그의 생가는 복원되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2005년 5월 그의 생애와 문학을 총 망라한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어 그의 발자취와 생애, 문학을 한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곳에 가면 온전한 시인 정지용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두루 살핀 후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기반의 문학체험은 독특한 아이템으로 가득 차있어 관람객이 정지용 문학을 재미있게 체험 할 수 있다.
손으로 느끼는 시에서는 정해진 위치에 서서 ‘꾸중하시는 선생님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손바닥을 내밀던 그 자세’를 갖추면 회초리 대신 감미로운 정지용의 시어가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흐른다.
그리고 음악과 영상을 배경으로 성우의 시낭송을 들으며 시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시화와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가곡 「향수」를 감상 할 수 있는 향수영상, 이해하기 힘든 시어들을 검색해서 그 의미와 시적 표현을 이해 할 수 있는 시어검색, 배경 영상과 음악위에 자막으로 흐르는 정지용 시인의 시를 낭송해 볼 수 있는 시낭송실은 흥미성과 오락성을 겸비하고 있어 관람객에게 인기가 높다.
다음으로 영상실에 들어서면,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 인간미 등을 서정적이며 회화적으로 그린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이 상영된다. 이 영상의 관람은 전시실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총 정리하는 시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정지용문학관을 이렇게 한바퀴 돌고나면 시인 정지용의 삶과 문학, 현대시사(現代詩史) 등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자연스럽게 쌓아가니 그 유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영상실 옆 문학교실은 교육, 또는 동호회, 문학단체, 일반인 등 단체 관람객들에게 개방 되어 있어 사전에 사용신청을 하면 이용할 수 있는 문학에 관한 다목적 공간을 호기심에 어려 둘러본다면 관람을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