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하늘아래 첫 동네 높은벌
'높은벌'은 옥천이 옥주라 불리울때부터 옥천의 마을이었지만 금강에 길이 막혀 장작 옥천장은 가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산을 넘고 재 넘어 굽이도는 20리길을 새벽을 돕고, 밤이슬 맞으며 심천장과 영동장을 오고가야만 했던 오지였다.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소문이 한양까지 전해져 임금님께 바칠 수라상을
만들던 장인이 직접 찾아와 옻진을 구해가기도 했으며, 지금은 몇 그루되지 않지만 예전엔
가죽나무가 많이 자라 가죽나무로 집을 짓기도, 그 나무를 베어 목재로 내다팔기도 하고,
봄에는 그 나무의 새순을 따 반찬거리 삼으며 생계를 이어갔던 ‘높은벌' 사람들.
북서쪽을 바라보는 산자락 높은 곳에 마을이 자리 잡아
아침햇살은 늦게 마을을 찾지만, 서산 너머로 질 때까지 온종일 볕이 비춰 층층이 일군 다랭이밭에 보리며 밀을 심어 한 해를 넘길 식량으로 삼았고, 가을이면 호두나무와 고염나무, 감나무의 열매는 장에 내다팔아 생활비에 보탰으며 팔다 남은 나머지는 겨우내 삭풍을 벗 삼아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간식거리였다.
또 마을아래
충청도를 휘도는 금강이 지나고 있으니 강태공의 여유 또한 없었을까. 입맛이 동하지 않으면 모를까. 산골이라도 밥상에 비린반찬 떨어질리 없었다. 이것저것 불편한 산골 살이지만, 마을 아래 아득히 깊은 산중을 헤집고 금강이 돌아나가는 그윽한 풍경이 있고 동에서 북으로 남으로 어디하나 거칠 것 없는 호방한 풍광이 함께하는 살기 좋은 아름다운 산골 ‘높은벌'은 마침내 전기(電氣)라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 오지의 운명을 벗게 된다.
때는 1970년.
옥천군 청성면에 속하면서 동이면의 접경지 부근에 위치한 ‘높은벌' 강 건너 서북쪽에 금강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함께 금강휴게소를 설치하면서부터이다. 금강휴게소가 자리한 곳은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이곳은 ‘높은벌'과 같이 옥천의 오지였던 강마을이었다. 험준한 산세 때문에 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도 금강휴게소에서 사용할 전기를 끌어 올 수 없어서 금강에 소수력발전소를 설치하기에 이르고 여분의 전기는 ‘조령리'와 ‘높은벌'을 비롯 인근 마을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소수력발전소의 혜택은 전기뿐만 아니라 편리한 교통의 혜택도 가져다주었다. 발전소의 둑은 잠수교가 되어 강 건너를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금강휴게소 진입로에 버스정류장을 설치하여 강마을 사람들의 옥천읍 나들이는 이웃마실 가듯 편리해 졌다. 금강휴게소는 상, 하행을 지나는 모든 차량이 한 장소에서 쉬어 갈 수 있는 단일 휴게소로 쉴 새 없이 지나는 사람들에 의해 명소로 알려지면서 유원지로 자리를 잡았으며 어업과 농업을 하며 생활하던 조령리 사람들은 토속음식점과 민박집도 내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금강 따라 떠나는 옥천여행은
조령리부터 시작한다. 금강나들목을 나서자마자 옥천의 강촌 속으로 빠져드는 ‘금강 따라 떠나는 옥천여행'은 강가의 풍요가 넘쳐나는 ‘우산리'를 지나고 옥천의 하늘아래 첫동네 ‘높은벌', 그 아래 숨박꼭질 하듯 산속에 숨어 있는 ‘강마을', 금강 제1지류 보청천의 청량함이 있으며
금강과 보청천의 합수점(合水点) 보청교를 지나면 수석인들이 즐겨 찾는 ‘합금리(윗쇠대 마을)' 강가와 전통 민속의 향기가 묻어나는 ‘청마리' 하며 강마을 정취 물씬 묻어나는 아랫쇠대 마을(합금리 버스종점)과 아직도 버스가 닿지 않는 유일한 오지 가덕리가 있으며 시골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걸으며 옥천의 문화유산을 부분이나마 엿보고 이 여행의 절정 독락정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환상의 여행 코스이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이 아름다운 옥천을 무심히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다. 옥천의 금강에서 뛰놀며 민박도 하면서 옥천 사람의 푸근한 정을 한껏 느낄 것이고, 전통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이 그대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