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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청성면 묘금리
묘금리(猫金里)는 원래 청산현 남면 저항리(猪項里)에 있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양저리(兩猪里)와 분구하여 묘금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묘금리라 부르게 된 것은 묘동(猫洞)과 금점(金店), 태동(泰洞)을 합하면서 묘동의 묘(猫)자와 금점의 금(金)자를 한자씩 취하여 묘금리가 되었다. 묘동은 “괴골”로 한자화 하면서 “괴”를 “고양이”로 발음하여 고양이 묘(猫)자를 써서 묘동이라 이름 지어졌고, 금점은 “쇠종골”을 한자로 쓰면서 “쇠”를 쇠 금(金)으로 “종”을 가게 점(店)으로 써서 금점이라 하였는데(쇠점골이라하여 점(点)자를 썼다고도 함) 쇠종골은 옛날에 쇠그릇을 만들었기 때문에 “쇠종골”이라 부른다하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태동은 원래가 “방아골”이었는데 마을이 방아고 같이 생기었다하여 “방아골”이라 불렀는데 이 마을이 세 동네 중에서 제일 크다 하여 태동이라 이름 지었다.

마을역사

  • 1739년, 1891년 : 여지도서와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저항리는 양저리와 묘금리를 관할하던 마을로서 청산현 남면 저항리라 하여 108호가 살았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정비 때 청산현이 없어지면서 옥천군에 소속되었으며, 남면을 청남면이라 고치고, 저항리를 양저리와 묘금리로 나누었다.
  • 1929년 :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청남면과 청서면을 한데 묶어 청성면으로 만들었으며 이 마을도 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이야기
청심도로(청성-심천)가 통과하는 쇠종골은 돌마당이란 옛날 심천장과 심천역에 기차를 타기 위하여 쉬어가던 넓적바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으며, 태동에는 1970년대에 600여명이 넘는 학생이 공부하였던 묘금초등학교는 2000년 3월 1일 폐교되고 한 기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괴골은 여양진씨(麗陽陳氏)의 집성촌이었으며, 쇠종골과 방아골은 경주김씨(慶州金氏)와 밀양손씨(密陽孫氏)의 세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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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청성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