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시 세계의 특징 세가지
- 첫째 시어 구사의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는 점
- 둘째 시의 형식면에서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성법에 기초한 2행의 단시형과 동시로서는 독특한 줄글식 산문시형을 보여줬다는 점
- 셋째 시인의 감정이 시에 노출되는 것을 엄격히 배제한 대상묘사의 이미니즘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시어에 대한 세심한 노력
그는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고어나 방언을 시어로 폭넓게 활용하고, 언어를 독특하게 변형시켜 자신만의 시어로 개발했다.
시의 형식면에서 지용은 2행 1연으로 된 단시형을 즐겨 썼다. 또한 줄글식 산문시형도 즐겨 썼는데, 이들 작품은 쉼표나 마침표 없이 문장이 종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연계적 구성을 보여준다. 20년대 소월이 자아표출을 통하여 자기 감정을 과다하게 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였다면, 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시 세계를 열어 보였다.
형태주의적 기법을 시도한 최초의 이미지스트이자 모더니스트
지용은 서구의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형태주의적 기법을 시도한 최초의 이미지스트이자 모더니스트였다. (「슬픈 인상화(印象畵)」, 「파충류동물(爬蟲類動物」 등의 초기시편은 형태주의적 기법을 보이는 대표작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그의 이미지즘은 단순한 시적 기술과 기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용의 이미지즘은 대상묘사의 심연으로부터 어떤 신운(神韻), 즉 표현된 것 외의 먼 운치를 감지하게 하는데, 우리는 그의 후기시편들을 통하여 이러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김우창은 지용이 “감각과 언어를 거의 가톨릭적 금욕주의의 엄격함으로 단련하여 「백록담」에 이르면, 감각의 단련을 무욕(無慾)의 철학으로 발전시킨 경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최동호도 “서구 추수적인 아류의 이미지즘이나 유행적인 모더니즘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순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 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문학사가들의 정당한 평가를 우리는 지용의 시 세계 전체를 조감할 수 있게 하는 대표작들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지용의 시 세계를 시기적으로 구분한다면, 휘문고보 재학시부터 일본 유학시절까지의 초기시, 귀국 이후 서울 생활이 본격화되면서부터 『정지용 시집』을 간행할 때까지의 중기시, 『정지용 시집』간행 이후인 후기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제 시기별 작품을 창작 순으로 살펴보자. (지용에게는 시, 시조, 동시, 일어시, 번역시 등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시와 동시만을 대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