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언어의 시인 정지용을 만나다.
가르치노라고 얻은 경험이 있다.
아이들을 제가 잘 자라도록 화초에 물을 주듯 병아리에 모이를 주듯 영양과 智見과 환경과 편의를 不絶히 공급할 것이지.
애비로서나 스승으로서나 결코 자기의 주견을 강제 주입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로그 가르치는 것은 어른이 하는 일이나, 자라기는 제가 자라는 것이다.
(정지용作 '散文'중에서)
일부 내용을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의 후배인
고 육영수여사의 소탈한 휘호와 같이 놓고 보니친절히 설명글을 덧대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이제 죽향초등학교.
“그곳에 옛 교사(校舍)가 아직도 남아 있다지.”
시인 정지용의 모교인 ‘죽향초등학교' 옛 교사를 찾아가는 걸음은 어릴 적 어머니의 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지루할줄 모른다. 헝겊 쪼가리를 모아 기운 학교 청소용 걸레를 콩기름 넣은 박카스 병과 함께 손에 쥐어주시며 아들 등교 길 바라지를 하던 어머니. “살살 문질러야지 까시가 안 일어나지 않지”, “손이 남아나지 않겠다 이놈아.” 하시면서 공부 잘하고 오라시던 그 모습.
콩기름 발라 마루바닥을 닦다가 손톱 밑을 가시에 찔려 몇 날을 고생 한 이후 장갑처럼 생긴 새 걸레를 만들어 주시며 걱정스레 당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옛 모습처럼 아련한 옛 교사는 정녕 변함없을까.
죽향초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니 학교의 정문 오른편에 아담하게 꾸민 꿈나무동산 끝에 그 예스런 건물하나 오롯하다.
책 읽는 소녀는 본래부터 없었는지, 꿈나무 동산은 이순신장군동상을 중심으로 육영수여사의 휘호와 정지용의 시비가 나란히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왼편으로 출처모를 3층석탑과 45회 졸업생들이 남긴 권학가(勸學歌)가 세워져 있다.
少年易老學難成 이니 / 一寸光陰不可輕 이라 / 未覺池塘春草夢 인데 / 階前梧葉已秋成 이라.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 섬돌 앞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느니라 (죽향초등학교 제45회 졸업생 일동)
차례로 읽고 보니 아이들 참된 교육은 이렇게 해야 됨을 이 학교 출신 두 선생은 이야기 하고, 45회 동창생들은 후배들이 혹여 방심할 새라 교문 입구에 교훈적 글을 남긴, 다소 대조적인 분위기는 교육에 관한 소신 또한 각기 다른 선생님들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그 분위기가 꼭 한없이 인자하신 선생님과 보기만해도 주눅이 드는 훈육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죽향초등학교의 옛 교사는 1926년 3월 1일에 현 본관 건물 동편에 목조함석지붕으로 3개의 교실규모로 신축하여 교사로 활용하던 것을 허물지 않고 보존하여 오다가 2003년 6월 30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제 57호로 지정 등록되어 죽향초등학교 역사(歷史) 건물로 활용 보존되어지고 있으며 이 목조교실이 정지용 시인과 고 육영수여사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라 한다.
죽향초등학교는
2018년 현재 19학급에 363명의 초등학생과 4학급 62명의 유치원생의 꿈이 자라는 아이들의 배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