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을 한결같이
묵을 쑤어 만든 음식을 판다
멍게의 이름이 다양한줄 알았다.
생선 파는 장사가 이름도 모르고 파는 생선이 있다.
멍기라는 것이 있다. 우엉거지라고도 하고 우름송이라고도 한다.
꼭 파인애플 같이 생긴 바다의 갑충류다.
칼로 쪼기어 속살을 빼내면 역시 파인애플 과육으로 비유할 수 있다.
물기 많고 싱싱한 이것을 길에 서서 먹고 걸어가면서 먹고 참외 깨물어 먹듯 하고들 있다.
나는 한점 이외에 도리가 없다. 청계(정종여(鄭鍾汝), 1914~1984)는 열 다섯개를 먹는다.
『답니더, 이거 참 답니더.』 비리고 떫은 것이 달다면 정말 단 것을 비리다고 할 사람 아닌가!
향기는커녕 나는 종일 속이 아니꼽다.”
정지용의 산문 ‘부산(釜山)2' 내용의 일부이다.
정지용은 지인과 함께 부산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총 5편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는데, 드문드문 먹거리에 관심을 보이며 부산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정지용 생가를 돌아보고, 구읍구경을 하다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
꼭 그렇지만 않더라도 “혹시”하며 찾아지는 것이 구읍의 전통 먹거리이다. 정지용 생가 구경을 마친 열댓 명의 중년 아저씨, 아줌마부대가 “묵 먹으러 가자”면서 구읍사거리로 향하는데 그 묵집은 “엎어지면 코 닿을”만큼 지척이다.
맛깔스런 김치가 그 묵 요리의 비법 중 하나이다.
묵채 한사발에 시원한 육수 넣고, 다진김치 한줌 얹어 양념 곁들이면 그만인 이 음식의 단촐한 구성은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못 낼일. 배추김치는 기본이어서 시도, 때도 없이 담다보니 아예 컨테이너 하나로 김치냉장고를 만들어 놓았다. 김치냉장고의 규모에 놀라면서도 그 많은 김치를 담아야 하는 할머니의 괴력에 또 한번 놀라는 것은 어디 나뿐이랴.
할머니의 김치 담그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묵 요리에 곁들이는 반찬은 철마다 다양한데 여름엔 열무김치, 가을엔 무우김치, 겨울엔 동치미다. 특히 동치미는 익자마자 동날 판이어서 아이 둘 들어가도 족할만한 동치미 항아리가 식당 뒤란에 열을 헤아린다.
구읍을 두 번째 찾았을 때도여전히 김치를 담그시기에 여념이 없는 묵집 할머니는 일본서 살다가 해방 후 옥천군 안남면 인포리로 이사를 하였고,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한다.
가난과 함께 자식 다섯 남기고 요절(夭折)한 남편의 비운에 할머니는 “하 기가 막혀” 망연했던 것도 잠시 뿐, 자식 다섯 바라지와 목구멍 풀칠 걱정에 묵 장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할매묵집'의 내력이다.
“얘들아 문 열어!”, “밥상 들어간다!” 후다닥 일어나 방문을 열면, “에이그 이놈들 빨리 문 열지 않고, 뭐했냐.”, “어여들 먹어라.” 정성들여 피운 첫밥그릇은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아랫목 이불속으로 들어가던 시절의 밥상. 이제 2대째를 대물림 하고 있는 ‘구읍할매묵집'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그 밥상의 정겨움이 소탈하게 손님을 맞고있다.
이 푸근한 정이 솟는 ‘구읍할매묵집'의 건너는
구읍사거리에서 구읍 삼거리 어귀 쯤 전통 한옥에 구수한 전통음악이 끊이지 않는 한식전문식당 ‘아리랑'이 있으니 주머니 사정 살펴가며 입맛 따르면 정지용 생가와 함께하는 구읍여행길의 먹거리는 제법 풍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