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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안남면 종미리
종미리는 종배리(從培里)와 미산리(薇山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마을이름유래

미산리는 마을위의 산이 낮고 고사리같이 퍼져 있다 하여 처음에는 고사리 궐(蕨)자를 써서 궐산리라 부르다가 좋지 않다하여 고사리 미(薇)자를 써서 미산리라 부르게 되었고, 300여년전 용궁전씨(龍宮全氏)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종배는 마을의 형태가 양옆으로 야산이 둘러 있고 배 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이 마을도 용궁전씨(龍宮全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궐산리(蕨山里)에 16호와 지내리에 67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는데 지내리에 현 종배(從培)마을이 포함되어 있었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궐산리(蕨山里)를 미산리(薇山里)로 고치고 16호가 살았고, 종배리가 분리되어 23호가 살았다.
  • 1914년 : 행정구역 조정때 종배리와 미산리를 합치면서 종미리(從薇里)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야기
종배 마을에는 음력 7월 13일에 ‘호미세(호무시)’ 라고 해서 백중놀이가 펼쳐진다. 마을 한 가운데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호무시나무라 하여 보호되고 있으며 요즈음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제사를 올리고 윷놀이 등을 통해 주민 상호간에 친선을 다진다. 종배 주변에는 마당들, 서당골, 승냥골, 제비실, 고시담, 서낭당, 솔고개 등이 남아 있다. 1980년대에 대청댐이 생기면서 농토와 마을 일부가 수몰되면서 이주민이 생겨 작은 마을이 되고 말았다. 미산마을에는 경율당(景栗堂) 이라는 서당이 있는데 영조 12년 1736년에 용궁전씨 선조이신 전후회(全後會) 공이 세워 후손들이 학문 연수와 인격수양의 도장으로 이용되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게 되었다. 미산 주변에는 꽃밭날골, 타산밭골, 절림이골, 여수밭골, 수수골, 으능정이, 투소골 가재골, 병뱅이, 배묵골, 장구먹 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마을의 인물
죽향리 출신 전좌한(全佐漢, 1899∼1986)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김응선 지사와 함께 ‘서울 주요 관청 폭파 미수사건’을 주도했다. 어려서부터 항일투쟁에 나서 독립선언문을 인쇄, 살포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선전하는 혈서를 붙였으며 폭탄을 만들어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려다 체포된 전 지사는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한 후에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마을의 명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3호 경율당은 조선 영조(英祖) 12년(1736) 경율(景栗) 전후회(全後會)가 마을입구에 서당을 짓고 자기의 호를 따서 경율당(景栗堂)이라 하였다. 경율 전후회는 율곡(栗谷) 선생의 학덕을 숭모하여 "율"(栗)자를 즐겨 썼다고 한다. 경율당은 후손들의 학문 연수와 인격수양의 도장으로 활용했으며 용궁전씨(龍宮全氏) 종중의 친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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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안남면
최종수정일 : 2018.08.23